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=== 벵골 상실과 왕실의 고립 === 1871년 [[벵골]] 철수는 단순한 식민지 상실이 아니었다. 제국 재정과 무역 구조, 본국 산업 성장의 기반이 한꺼번에 흔들린 사건이었고, 그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은 이후 십수 년간 루이나 정치를 지배했다. 책임론이 왕실로 향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. 1858년 [[벵골 총독부]]가 직할 기구로 개편되면서 [[아멜리아 1세]]가 제(帝) 칭호를 받았고, 왕실은 그 칭호를 대외적으로 적극 활용해 왔다. 제국의 영광을 자신의 것으로 삼았던 만큼 제국의 상실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. 1871년 철수와 함께 제 칭호가 폐지되었을 때, 신문들은 이를 두고 왕실이 13년 만에 빌려 온 옷을 벗었다고 썼다. 같은 시기 왕실은 대중 앞에서 물러나 있었다. 1865년 부군 [[알브레히트 폰 코부어]]를 잃은 아멜리아 1세는 이후 13년간 [[윈드미어]] 궁에 머물며 공식 석상에 거의 나서지 않았다. 의회 개회식에도 참석하지 않는 해가 이어졌고, 왕실의 공적 기능은 사실상 멈춰 있었다. 왕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제국이 무너지자, 사람들은 두 가지 질문을 동시에 던지게 되었다. 누가 책임을 지는가, 그리고 애초에 왕은 무엇을 하는가. 왕실 재정을 둘러싼 논란도 이 시기에 본격화되었다. 의회는 왕실비 심의 때마다 국왕이 수행하는 공무의 목록을 요구했고, 왕실이 제출한 자료가 부실하다는 이유로 삭감을 관철한 사례가 1870년대에만 세 차례 있었다. 왕실은 이를 왕권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였으나, 대중의 반응은 대체로 냉담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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